<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잠식하는 시간, 스태그플레이션>
홍영표 변호사님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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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태그플레이션은 경제학 사전에서 가장 불길한 합성어다. 부진한 경제 성장과 높은 실업률, 그리고 고물가가 하나의 몸통에 공존하는 기형적 현상 — 일반적으로 물가가 오르면 경제가 뜨겁고 성장하는 것이 정상이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은 성장이 멈춘 상태에서 물가만 치솟는 최악의 역설이다. 확장과 수축이라는 두 개의 날이 동시에 목을 조이는 것이니, 이것은 경기 순환의 논리 안에서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괴물이다.
그런데 바로 지금, 그 괴물이 다시 수면 위로 머리를 내밀고 있다. 2026년 3월, 미국-이란 무력 충돌이 호르무즈 해협의 유조선 통행을 사실상 마비시켰고, 브렌트유는 배럴당 100달러를 돌파하며 2022년 이후 처음으로 세 자릿수 영역에 진입했다.
2월 미국 비농업 고용은 9만 2천 건 감소라는 충격적 수치를 기록했고, 실업률은 4.4%로 올라섰다. 연준은 2026년 인플레이션 전망치를 2.4%에서 2.7%로 상향 조정했으며, 애틀랜타 연준의 시장 확률 추적기에서는 금리 인하 확률이 60%에서 16%로 급락한 반면, 오히려 금리 인상 확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S&P 500은 1월 사상 최고치에서 6.77% 하락하며 4주 연속 하락을 기록 중이고, 야데니 리서치의 에드 야데니 소장은 1970년대식 스태그플레이션 확률을 35%까지 올렸다.
반세기 전의 교과서적 사례와 오늘의 현실 사이에는 섬뜩한 평행선이 놓여 있다. 1973년 1차 오일쇼크로 인해 국제 유가가 급등하고 제조 및 운송 원가가 폭등하면서 이 거시경제적 악몽이 처음 현실화되었다.
워런 버핏은 그 시기를 가리켜 “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잠식하는 시기”라고 묘사했다. 그리고 지금, 이란-이스라엘 분쟁이라는 새로운 지정학적 뇌관이 에너지 공급의 급소를 정확히 찌르면서, 그때와 동일한 구조의 공급 충격이 세계 경제를 짓누르고 있다.
주식 투자의 본질은 하나의 정교한 물리학 게임이다. 기업의 미래 이익이라는 ‘로켓 추진력(분자)’과 금리라는 ‘중력(분모)’ 사이의 힘겨루기 — 이 두 벡터의 교차점이 바로 우리가 ‘적정 가치’라고 부르는 것이다.
스태그플레이션은 이 공식을 근본부터 파괴한다. 물가를 잡기 위해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면 할인율(분모)은 무겁게 커지는 반면, 경기 불황으로 기업의 실적과 미래 현금흐름(분자)은 쪼그라드는 이중고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주가 하락이 아니라 가치 평가 체계 자체의 붕괴다. 분자가 줄고 분모가 커지면 자산의 현재 가치는 산술적으로가 아니라 기하급수적으로 축소된다.
특히 먼 미래의 꿈을 먹고사는 기술주와 성장주들은 듀레이션의 함정에 빠져 금리 상승의 직격탄을 맞고 가장 처참하게 부서진다.
2026년 3월의 시장이 정확히 이 시나리오를 재현하고 있다. 에너지 섹터가 이란 분쟁 개시 이후 S&P 500 내 유일한 양(+)의 섹터로 군림하는 동안, 나이키와 스타벅스 같은 소비재 기업은 주유비 부담에 짓눌린 가계 지출 축소의 직격탄을 맞고 무너지고 있으며, 빅테크주에 집중된 시가총액 가중 포트폴리오는 AI 초호황의 꿈이 에너지 위기라는 현실 앞에서 우왕좌왕하는 광경을 목도하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폐해는 주가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업의 재무제표 역시 인플레이션 앞에서는 거대한 착시를 일으킨다. 버핏은 명목상 ROE가 두 자릿수로 높아 보이더라도, 물가 상승률을 빼고 나면 실질 수익률은 형편없이 떨어질 수 있음을 오래전부터 경고해왔다. 연 12%의 ROE가 화려해 보이지만, 인플레이션이 8%라면 실질적으로 주주에게 돌아가는 것은 고작 4%에 불과하다. 그것도 세금을 빼기 전의 이야기다.
특히 전력, 철도, 항공, 정유와 같이 거대한 공장과 기계를 유지해야 하는 자본집약적 산업은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에 가장 처절한 시련을 겪는다. 화폐 가치가 하락하면, 낡은 설비를 유지하고 교체하는 데 투입해야 할 자본이 기존보다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생산량은 그대로인데 유지 비용만 폭등하니, 명목 이익이 늘어도 실질 현금흐름은 사막의 모래처럼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버린다. 게다가 경기 침체로 소비 수요가 둔화되고 경쟁이 심화된 불황 속에서는 원가 상승분을 소비자 가격에 온전히 전가하기조차 어렵다. 매출은 멈추고, 비용은 뛰고, 현금은 마르는 — 삼중고의 함정이다.
2026년 현재, 이 함정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나는 곳은 AI 데이터센터의 전력 인프라다. 에너지 수요의 폭발이 단순히 지정학적 위기의 산물만이 아니라 기술 혁명 자체가 에너지 인플레이션의 구조적 원인이 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AI의 약속은 화려하지만, 그 약속을 실현하는 데 필요한 물리적 인프라의 비용은 인플레이션이라는 중력에 의해 끊임없이 부풀어 오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척박한 환경 속에서 본능적으로 현금과 채권이라는 ‘안전 자산’으로 도망치는 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다. 그러나 그것은 결코 안전한 피난처가 될 수 없다. 은행에 돈을 넣어두더라도 실질 구매력은 매일 밤 줄어든다. 2%의 예금 금리는 7%의 인플레이션 앞에서는 매년 5%씩 부를 삭감시킨다.
채권은 더욱 위험하다. 금리가 급등하는 시기에 채권 가격은 역관계로 하락하며, 버핏의 표현대로 원금의 실질 가치를 송두리째 도둑맞는 “자산 압수 증명서”로 전락해 버린다. 이번 위기에서 미국 국채 수익률이 급등한 것은 시장이 인플레이션의 고착화를 두려워하고 있다는 직접적 증거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이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단어를 “1970년대의 용어”라며 애써 거리를 두려 했지만, 시장은 이미 그 단어가 지칭하는 현실 속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거대한 파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주는 무엇인가? 해답은 두 개의 키워드에 있다. 바로 ‘가격 결정력(Pricing Power)’과 ‘자본 경량화(Capital Lightness)’.
첫 번째 방주는 원가가 올라도 이를 제품 가격에 전가할 수 있는 독점적 지위나 강력한 브랜드를 가진 기업이다. 코카콜라처럼 막대한 자본 지출로 공장을 늘리지 않고도 브랜드 충성도를 바탕으로 가격을 인상할 수 있는 무형자산 중심의 기업들은 인플레이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들에게 물가 상승은 위기가 아니라 이윤의 팽창이다. 투입 원가가 10% 오르면, 제품 가격을 12% 올려 오히려 마진을 넓히는 것 — 이것이 가격 결정력의 마법이다. 반면, 브랜드 없이 원가 경쟁에 의존하는 기업은 인플레이션이 올 때마다 수익이 녹아내리는 빙하와 같다.
두 번째 방주는 압도적인 재고 회전율을 통해 ‘마이너스 운전자본(Negative Working Capital)’을 창출해 내는 코스트코와 같은 비즈니스 모델이다. 이들은 내 자본 대신 공급업체의 자금으로 장사를 하며, 물가가 오를수록 매출 덩치가 커져 손에 쥐는 공짜 현금(플로트) 엔진을 더욱 빠르게 돌릴 수 있다. 인플레이션은 이들의 플로트 엔진에 연료를 더 부어주는 셈이다.
흥미롭게도, 2026년 3월의 시장은 이 원칙을 실시간으로 증명하고 있다. 소비자들이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PB(자체 브랜드) 상품으로 대거 이동하면서 월마트와 코스트코의 매장 방문객은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공급업체와의 협상력이 곧 방어적 해자가 되는 시대가 다시 도래한 것이다. 반면 나이키와 스타벅스는 소비자 지갑이 주유비에 먼저 열리는 현실 앞에서 수요 위축의 칼날을 맞고 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폭풍우 속에서는 자산의 장부가치나 과거의 성적표가 투자자를 구해주지 않는다. 낡은 유형자산은 가치 창출의 동력이 아니라 비용을 갉아먹는 애물단지가 될 뿐이다.
이 위기를 건널 유일한 생존법은 거대한 자본 지출 없이도 가격을 통제할 수 있는 위대한 비즈니스의 지분을 소유하는 것 — 그리고 공포에 떠는 군중이 버리고 간 그 지분을 주워 담을 용기를 갖는 것이다.
블랙록 CEO 래리 핑크는 2026년 3월 연례 서한에서 이렇게 적었다: 시장에 머무르는 것이 타이밍을 맞추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고. 지난 20년간 S&P 500에 투자한 1달러는 8배 이상으로 불어났다.